베토벤 교향곡 제6번 F장조 작품 68 '전원'(Sinfonie Nr.6 F-ur op.68 "Pastorale"/Symphony no.6 in F major, op.68 'Pastorale')
베토벤의 여섯 번째 교향곡. 베토벤 교향곡 전곡 중 3번과 함께 작곡자 자신이 직접 제목을 붙인 곡이고, 유일하게 전악장에 표제들이 붙어 있어서 훗날 베를리오즈와 리스트 등에 이르는 표제음악 계열 작곡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베토벤 자신은 표제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묘사적으로 연주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할 것이다' 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베토벤의 짝수번 교향곡들은 대부분 홀수번 교향곡(1번은 제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약한데(물론 개인적 취향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이 6번 교향곡만큼은 홀수번 교향곡 못지 않은 명성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
베토벤은 빈에 머무를 때부터 자연 속을 거니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여름에는 아예 번잡한 빈을 떠나 근교의 시골 마을들인 바덴, 뫼들링, 펜칭, 노이슈타트 등에서 지내며 산책을 취미로 삼았을 정도였다.
이런 자연주의자 성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홉 곡의 교향곡 중 유일하게 팀파니와 트럼펫, 트롬본, 피콜로 등 '자극적인' 악기의 사용이 극도로 절제되고 있는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각 악장의 독일어 표제는 다음과 같다.
1. 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즐거운 감정 (Erwachen heiterer Empfindungen bei der Ankunft auf dem Lande)
2. 시냇가의 풍경 (Szene am Bach)
3. 시골 사람들의 즐거운 모임 (Lustiges Zusammensein der Landleute)
4. 폭풍우 (Gewitter, Sturm)
5. 목동의 노래, 폭풍이 지나간 뒤의 기쁨과 감사 (Hirtengesang. Frohe und dankbare Gefühle nach dem Sturm)
이 제목들은 베토벤 자신의 착상이었다고 한동안 간주되었지만, 후대의 연구가들이 찾아낸 바에 의하면 선배 작곡가였던 유스틴 하인리히 크네히트라는 작곡가가 쓴 교향곡 '자연의 음악적 초상' 에 붙은 것들과 유사하다고 한다.
이 교향곡의 악보 출판 광고가 베토벤이 쓴 초기 작품인 '선제후 소나타' 의 광고와 같이 실렸기 때문에, 베토벤이 먼 훗날 기억을 떠올려 차용했다는 주장이다.
작곡 시기는 주제 착상만 따지면 오히려 5번보다 좀 더 앞선 1803년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1808년 상반기였다.
교향곡 두 곡을 연이어 작업하는 방식은 후속작인 7번과 8번에서도 이어졌고 말년에 합창 교향곡과 장엄미사도 동시에 작곡이 진행되었다.
표제가 다섯 개인 만큼 악장 수도 기존의 곡들과는 다르게 다섯 개로 구성되는데,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전작인 5번과 비슷하게 쉬지 않고 계속 연주된다.
1악장은 두 개의 주제를 갖는 소나타 형식이지만, 곡의 성향상 1주제와 2주제가 그다지 대립되는 성향의 주제는 아니다. 주제를 내놓고 주무르는 발전부에서는 첫 번째 주제만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5번과 비슷한 구성 방식을 취하고 있다.
느린 2악장 역시 소나타 형식이다. 후반부에 플루트와 오보에, 클라리넷이 각각 나이팅게일(꾀꼬리), 메추라기,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묘사하는 짤막한 솔로들을 연주하고 있다.
3악장은 표제 외에 다른 것은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전작인 4번과 비슷한 ABABA' 형식의 스케르초라고 볼 수 있다.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의 스케르초 악장들에서 보여준 해학이나 강렬한 이미지 대신 훗날 왈츠의 중요한 모태가 되는 오스트리아 시골 춤곡인 렌틀러(Ländler)의 순박한 느낌을 모방하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중에서는 드물게 춤곡적인 악장인데 8번의 3악장과 더불어 유이하다. 사실 베토벤 교향곡 중에서 첫 춤곡 악장이다.
하지만 선배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처럼 귀족적 미뉴엣이 아니라 서민적 렌틀러를 취한 것에서 전통과 차이가 있다.
이어지는 4악장은 특별한 형식 없이 표제 묘사만으로 끌어나가는, 가장 짧지만 이 곡에서 제일 강렬하게 쓸고 나가는 인상이다. 개요 란에 쓴 것처럼 그동안 탱자탱자 놀던쉬고 있던 피콜로와 트롬본, 팀파니가 폭우와 천둥번개를 묘사하고 있다.
폭우가 차츰 잦아들고 역시 바로 이어지는 5악장은 론도 형식과 소나타 형식을 합친 스타일인데, 1악장에서 보여준 편안함을 유지하되 약간 들뜬 듯한 인상을 보여준다.
악기 편성은 피콜로/플루트 2/오보에 2/클라리넷 2/바순 2/호른 2/트럼펫 2/트롬본 2/팀파니/현 5부(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콘트라베이스). 피콜로와 팀파니는 4악장에서만, 트럼펫은 3~5악장에서만, 트롬본은 4악장과 5악장에서만 사용된다.
피콜로와 트롬본은 이미 5번 교향곡에서도 사용했는데, 트롬본의 경우 5번 교향곡에서 세 대 쓰던 것을 여기서는 두 대로 줄이고 있다. 아마 금관악기들 중 가장 음량이 크고 강렬하기 때문에, 세 대를 쓰면 균형이 깨질 거라고 생각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