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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늘 '포스트 아베' 선출…스가 70% 압승 예상




[앵커]


사실상 일본의 차기 총리를 결정짓는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오늘(14일) 열립니다.


아베 정권의 2인자였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압승이 예상되는데요,


결국 아베 3기가 되리라는 우려 속에 한일관계 변화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이상현 기자입니다.


[기자]


일본이 사실상 차기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둔 가운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압승이 예상됩니다. 선거는 국회의원 394명과 대표 당원 141명이 한 표씩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치러집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는 집권당 총재가 의회 지명을 통해 총리가 되기 때문에,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가 아베 총리의 후임을 결정하게 됩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스가 장관은 투표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의 70%, 대표 당원의 약 60%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스가 장관은 이달초 자민당내 주요 파벌들의 잇단 지지선언로부터 시작된 대세론을 줄곧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과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은 각각 60∼80표에 그치는 가운데 박빙의 2위 싸움을 벌일 것으로

관측됩니다.


두 후보는 차차기를 겨냥한 2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신임 자민당 총재는 오는 수요일 일본 중의원에서 신임 총리로 지명돼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하게 됩니다.


스가 장관이 아베 정권의 정책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결국 아베 3기로 흘러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하지만 막상 당선되면 어느 정도 자신의 색을 드러낼 가능성도 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일본 관방장관> "나는 내 나름의 (정상)외교 자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방식대로의 외교 자세를 관철하고 싶습니다"


특히 아베의 7년 8개월간의 장기 집권 마무리와 총리 교체가 경색된 한일관계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새로 선출되는 자민당 총재는 오는 16일 중의원에서 차기 총리로 지명된다.

현재로선 아베 정권 총리관저의 이인자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로 유력한 상황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스가 장관이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전체 투표수의 약 70%를 쓸어 담는 압승을 거둘 것으로 12일 예상했다.



이번 총재 선거는 당 소속 국회의원(394명)과 전국 47개 도도부현 지부연합회 대표 당원들(47×3=141명)이 한 표씩 행사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마이니치가 국회의원 본인이나 비서, 당내 파벌 간부 등을 취재해 지지표를 분석한 결과, 스가 장관이 자민당 국회의원으로부터 전체의 70%인 300표에 육박하는 표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스가 장관과 함께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과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은 각각 50표 이상, 30표 미만의 국회의원 표를 받을 것으로 조사됐다.


마이니치의 대표 당원 동향 조사에서도 스가 장관이 80표 이상으로 압도적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30표에 조금 못 미치고, 기시다 정조회장은 10여표에 그칠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전체 535표 중 스가 장관이 약 380표를 받아 압승한다는 게 마이니치의 조사 결과다.


요미우리신문은 자민당 국회의원 394명 중 392명의 의향을 확인한 결과, 290명(74%)이 스가 장관, 53명(13%)이 기시다 정조회장, 24명(6%)이 이시바 전 간사장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고 13일 보도했다.


스가 장관은 아베 정권의 정책 노선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스가 장관은 지난 8일 자민당 총재 선거 '소견 발표 연설회'에서 헌법 개정에 대해 "자민당 창당 이래 당시(黨是·당의 기본방침)"라며 "확실히 (개헌에) 도전해 가겠다"며 아베 총리가 추진해온 개헌을 지속해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스가 장관은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는) 일미(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정책을 전개하고 있다"며 "국익을 지키기 위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미국이 주창한 전략)을 전략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중국을 비롯한 근린 국가와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외교·안보 정책을 계승한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스가 장관은 12일 일본기자클럽 주최 자민당 총재 후보 토론회에선 외교 측면에서 "(아베 총리와) 상담하면서 가겠다"며 퇴임 후에도 아베 총리에게 협력을 구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성장 과정

1948년 12월 6일 부농의 아들로 아키타현 오가치군 오가치정(현재 유자와시)에서 태어났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2명, 남동생 1명이다. 아버지 스가 와사부로는 남만주철도의 직원으로서, 당시 만주국의 수도였던 퉁화(通化)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이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온 뒤 고향 아키노미야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아버지는 '아키노미야 딸기(秋の宮いちご)'를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하여 아키노미야 딸기 생산출하조합의 조합장과 오가치정의회 의원, 유자와시 딸기 생산집출하조합 조합장 등을 역임하였고, 2010년에 93세로 사망하였다. 어머니와 숙부·숙모는 전 교사이며, 두 누나도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정계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빈농의 자식, 흙수저 출신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였으나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후 거짓 미담이었음이 밝혀졌다. 여성 대학 진학률이 낮던 당시 누나들이 대학을 나와 교사가 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학창 시절 이발소를 자주 다니면서 머리 관리를 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상경하여 골판지 공장에 취직하였고, 고학으로 2년 늦게 호세이대학에 진학하였다. 여기까지는 사실이긴 하나, 알려진 것과 달리 집단 취업은 아니고 그냥 몇 달만 일하다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다가 남들보다 2년 늦게 입학한 것이다. 당시 도쿄의 주요 사립대학 중 가장 학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로 호세이대학 제2부[3] 법학부 정치학과에 진학하였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정식 주간 과정이라 제2부라는 주장은 거짓이다. 1973년 대학을 졸업하고, 겐덴세츠비 주식회사(建電設備)[4]에 입사하였다.

정치 입문과 시의원

1975년에는 정치인을 지망하여 호세이대학 취업과와 상담을 하였고, OB회 사무국장으로부터 호세이대학 출신인 제57대 중의원 의장 나카무라 우메키치의 비서를 소개받아 같은 파벌이었던 중의원 오코노기 히코사부로의 비서가 되었다. 이후 11년에 걸쳐 비서를 맡았다. 1983년에는 오코노기 중의원이 통상산업대신에 취임함에 따라 대신 비서관을 맡게 되었다.

1987년에는 요코하마시 니시구(西区) 선거구 출마하여 시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 이후 시의원으로 재선까지 성공한다. 시정에 큰 영향력을 가졌던 오코노기 중의원이 사망한 후에는 정치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오코노기 의원의 사실상 대리인으로서 활동하였다. 중의원 비서 시절에 맺은 정·재계의 인맥을 활용하여 실력을 발휘하였다. 다카히데 히데노부 시장으로부터 인사 등에 대해 상담을 자주 받는 등 '요코하마의 그림자 시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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